착하고 힘있는 사람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속한 어떤 사람이 강연을 하면서 기윤실의 목표는 “착하고 힘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착하고 힘있는 사람”은 비단 기윤실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기독교인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델로 삼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힘을 키워서 그것을 착하게 좋은 일에 쓴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는 착하고 힘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선 신의 모습을 버리고 가난한 민중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착한 사람”이었는가? 예수의 삶은 물론 사랑의 결정체였지만 그것이 그가 “착한 사람”, 즉 당시 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동시대에서 가장 모범적이며 윤리적인 사람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참지 못할 정도로 유대교의 윤리적 가치를 철저히 부인했고,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윤리를 넘어서는데 있음을 설파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즉 당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불온하고 위험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착하고 힘있는 사람”을 지향하는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칭찬받으며,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높이며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예수는 힘뿐 아니라 “착함”까지도 하나님 나라에 걸림돌임을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사실 착한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그 뒷편으로 추구하는 “힘”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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