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

최근 있었던 국내 최초의 공개 동성결혼식에 몇몇 기독교인들이 난입하여 행사를 방해하고 오물을 던지기도 했다는 소식에 분개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비록 동성애가 죄이기는 하지만, 민주사회에서의 기본적인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몰지각한 행동은 할 수 없는 바, 무례하게 결혼식을 방해하고 오물을 뿌리는 모습은 기독교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이러한 목소리들을 듣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기독교가 동성애에 대한 광적인 혐오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동성애가 죄이기는 하지만”이라는 전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야만적인 종교인들을 비판하며, 죄와 그 죄를 지은 인간은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상대방의 모습을 죄로 규정하는 한, 남을 정죄하기는 마찬가지다. ‘네 행동과 생활방식은 죄야’라고 말하는 것과 ‘너는 죄인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정죄’란 결국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인데, 남의 행동을 죄로 규정하면서 남을 정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한, 오물을 손에 들었건, 멀찍이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건, 두 모습에는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정죄의 칼로 타인을 상처입히며, 그를 통해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정당화 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외양을 유지하면서 남의 모습을 가리켜 죄라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좀 더 교묘하게 다수자로서의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성애자 기독교인들은 이제 동성애에 대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성애가 죄라는 생각 자체를 뿌리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지지부진한 논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예수의 사랑의 실천에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정죄는 이성애자들의 취향일 뿐, 성경에서도 예수의 삶 속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된 것이다.

정죄”에 대한 3개의 생각

  1. 성경에 대해 몇가지 오해를 하고 계셔서 댓글을 남깁니다.
    성경에서는 신구약 모두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규정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기에 아무도 스스로의 공로로 하나님께 갈수없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아무도 멸망되기를 원치 않으시지만 동시에 가장 공평하고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죄가 아니라고도 하실수없습니다.
    그래서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모두의 죄값을 치르시고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일이 유효하게 되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 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고침을 받겠습니까? 또 한번 죄사함을 받았다고해서 여전히 죄를 짓는다면 그는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위해 어떤 희생이 치러졌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니 아직은 제대로 믿고 있다고 보기 힘듦니다.
    죄는 동성애만이 아니라 남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이고 마음 속으로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도 죄입니다.
    아들이 부모님의 옳은 훈계를 무시하는 것도 죄입니다.
    도둑질한 아이에게 잘했다 잘했다 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지요.
    그러나 부모님의 훈계를 듣고 도둑질이 죄라는 것을 알고 뉘우치며 물건을 돌려준 아이에게는 용서해주어서 마치 도둑질한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대해주는 것이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이정도면 선생님의 약간 오해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이 될것 같습니다.

  2. 남을 정죄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네요.
    정죄라는 번역이 우리 일상에서는 좀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또 성경에서도 잘못된것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고 말 하도록 이야기하고 있어서 마치 모순된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친히 그런 모범을 보이신 대목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에게도 엄히 꾸짓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정죄는 법정용어로서 충분히 증거를 갖고 거리낌없이 유죄판결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정죄하지 말라고 한것은 첫번째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이고 두번째는 최종 심판과 집행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참사랑인지 가르쳐주셨으니 친구가 죄를 짓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만 친구가 죄를 지었다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죽이거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더 큰 죄를 짓는 것이 되지요.
    죄는 죄라고 알려주고 말을 듣지 않으면 점점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서 죄를 알리고 끝내 고집하면 교회공동체에서 쫓아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줄 알고서 용서를 구하면 7×70번을 죄를 반복하고 다시 용서를 구하여도 계속 용서해주라고 하셨습니다.
    490번을 엄격히 계산하라는 뜻이 아니라 (히브리어에서7은 완전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끝까지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에 동성애자가 다닐수있습니다.
    아니 그러기에 더욱 다녀야 합니다. 쉽게 못 고쳐서 죽을때까지 회개하고 또 같은일을 반복한다해도요.
    그러나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한다거나 반대로 동성애 사실을 숨길수 밖에 없는 교회라면 그 점에 있어서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라고 볼수는 없겠지요.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동성애문제를 건강하게 다루는 교회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그런문제를 접해본적도 진지하게 다루어 본적도 없기 때문에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하는 문제때문에 생기는 교회와 사회의 어려움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3. 글을 읽어주시고 상세히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 품고 계신 귀한 분이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 철저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교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비록 동성애를 죄로 보는듯한 구절들이 몇 군데 있지만 성경 전체의 문맥으로 보았을 때 그 구절들을 근거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삶이 이것을 드러내고 있지요. 교회가 “동성애는 죄”라고 고집하는 대신 동성애자들이 겪는 아픔에 촛점을 맞추고 그들을 먼저 끌어안을 수 있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증거될 것이라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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