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선, 영상의 폭력

1. 교회에서 펴낸 달력의 12월은 교인들이 외부의 기관에서 한 자원봉사활동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기타를 들고 신나는 표정을 지은 불우 가정의 청소년들, 봉사자들의 공연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양로원 할머니들, 에이즈 환자들과 어울려 교육활동에 몰두해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러한 사진들이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교인들 중 자원봉사자들이 섬기고 있는 단체들이 어떠한 곳이고, 사진에 담긴 청소년이나 할머니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 아는 이는 드물다. 단지 “우리 교회도 이렇게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의 느낌을 받는데 그친다.

2. 예배시간 중 교회의 단기선교팀이 동남아시아의 오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내용이 담겨있는 동영상을 튼다. 감동적인 음악, 영감을 주는 말들, 단기선교를 준비하며 우리 마음을 불태웠던 감동이 화면을 채운다. 그러나 우리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왔음을 고백하는 겸손의 표현 뒤에는, 선교지의 그들이 얼마나 우리의 도움을 고대하고 있는지가 내심 강조된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문명의 이기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낯선지, 선교여행 중 만난 동네아이들의 눈망울이 얼마나 순박한지, 구구절절한 내용을 통해 동정심이 강요될 뿐, 막상 선교지의 목소리는 거기 담겨있지 않다. 동영상이 목표로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켜 이 선교의 사역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일 뿐. 이렇게 선교지의 사람들은 교회의 홍보사역을 위한 소품으로 전락한다.

사진과 비디오 등의 영상매체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은 늘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다른 눈으로 기록함으로써 새로운 문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특정한 시선에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는 폭력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컴퓨터를 통한 영상편집이 보편화되면서, 사진과 동영상의 촬영과 활용이 교회 사역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각종행사의 홍보를 위한 영상, 유튜브 등을 통해 전달되는 신앙의 메시지, 선교활동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촬영 등, 사진과 비디오의 촬용과 편집이 교회 내의 독립된 사역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광범위한 활용에 반해 영상매체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가 제작하는 영상에서, 카메라는 전적으로 교회의 시선을 대변한다. 위의 두 사례가 보여주듯이, 교회의 카메라는 가난한 자든, 선교지의 사람들이든, 우리 이웃의 시각을 표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우리의 이웃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담아내려 고민하는 대신, 교회의 카메라는 그저 우리의 입장에서, 타자로서의 이웃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볼 뿐이다. 카메라에 담긴 이웃은 우리보다 가엾은 존재,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 우리의 사랑의 수동적 대상이다. 거기에는 이웃의 목소리도, 숨결도, 아픔도 담겨있지 않다. 교회의 영상 속에서 우리의 이웃은 영원히 우리와 동등해질 수 없는 철저한 타인, 우리의 관점을 반영하는 하나의 피사체일 뿐이다.

이웃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이웃로 하여금 직접 카메라를 향하여 말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이 단지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기대하는,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 얼마나 우리의 사랑의 손길을 고대하고 있는지, 우리를 닮는 것이 저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영상은 우리가 얼마나 자비롭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존재들인지를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영상은 폭력의 도구이다. 사물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물리적 힘을 통해 우리의 이웃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는, 그럼으로써 내 의로움을 내세우는 영상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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